10월19일(토)
내일 설교의 제목은 <약속의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약속이라는 게 성립할까?
약속은 평등한 관계에서만 가능한 사건인데
하나님과 인간은 평등한 관계가 아니지 않은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성서가 말하는 약속은 우리가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약속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쌍방이 서로 조건을 맞추는 것과는 다르다.
성서의 약속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제안이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제안했다고 해서
이것을 불평등한 약속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사람은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무엇이 좋은지 모르기에
그에게 어떤 조건을 제시하라고 말하는 건 바람직한 게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생명을 얻는 길을 알기에
바로 그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옳다.
이런 점에서 성서의 약속 개념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구원과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성서기자들이 약속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이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데에 있다.
하나님의 약속만이 자신들을 구원한다고 말이다.
약속 개념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속성이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약속에 제한시킨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능의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약속을 무시하거나
중간에 약속을 변경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파멸당하는 것을
억지로 막지 않으셨다.
우리의 삶에도 그런 불행이 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자기 제한은 약속만이 아니라
자신의 창조와 창조의 보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물이 밑에서 위로 흐르게 하시지 않는다.
악한 사람이 선한 사람에게 휘두르는 칼을
순간적으로 꽃으로 변화시키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자신의 창조세계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으시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기 제한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절대적인 능력을 소유하신 하나님이
십자가에 처형당했다는 것은
자신의 전능을 땅의 질서에 제한시키셨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아파하실까'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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