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3일(수)
오늘 수요공부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살아있다는 경험을 언제 하느냐고 물었다.
공연한 질문일지 모른다.
모두들 생생하게 잘 살고 있는 마당에
당신 정말 살아있다는 걸 느껴, 하고 물었으니 말이다.
정신없이 그냥 쫓기며 사는 것과
실제로 삶을 느끼면서 사는 것은 다르다.
대개는 정신없이 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거나 허무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런 느낌이 오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시 정신없는 삶으로 돌아간다.
그게 그나마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삶이 원래 그런 거니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먹고 사는 것만 해도 힘든 마당에
삶을 느끼지 마니 하는 것은 사치라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무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그런 방식으로는 삶을 충만하게 누릴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 베르디의 <레퀴엠>을 몇 사람이 들었다 하자.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여기서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할 것이다.
베르디의 이 작품을 충분히 감상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생명의 깊은 차원을 여기서 경험할 것이다.
레퀴엠을 모르고 살아도 큰 문제는 아니나
알고 사는 사람에 비해서 삶을 궁핍하게 경험할 것이다.
삶 경험은 바로 하나님 경험이다.
삶을 추상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또한 그렇게 여긴다.
삶에 깊이가 있다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실질적으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좀 줄여서,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삶 경험은 존재 경험이다.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의 영혼에 가득 채워지는 경험이다.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
이 세계 안에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사실 하나로
충만한 기쁨을 맛볼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경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저는 어렸을 때부터 조숙해서 그런지, 엉뚱해서 그런지
인생 또는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의 의미와 가치와 목적이 무엇인가,
사람은 왜 사는가, 사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등등의 질문들을 마음 속으로 많이 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그런 질문들을 잘 하지 않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인들 같은 경우는 지난 군부독재정권의 '경제개발정책' 때문에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경제동물화'가 되어서
그런 질문들을 별로 하지 않고 사치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기독교인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독교인들도 비기독교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인간에 대해, 인생에 대해 생각할 때
인간의 '존재' 그 자체, '생명' 그 자체에 큰 무게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상은 가면 갈수록 사람에 대해, 삶에 대해
경제적 가치, 경제적 능력, 사회적 지위, 위대한 업적이나 공로,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 등을
기준으로 해서 모든 것을 평가하고 판단하는데,
기독교와 성경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런 것이 근본이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대로
'존재 그 자체', '생명 그 자체'를 근본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목사님 제가 얘기하는 게 '존재론적인 삶', '은총의 삶'이 맞는지요? ^^ 앞으로 부단히 배워야겠습니다.
제가 도사는 아니니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