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5일(금)
지난주 설교의 성경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새로운 약속이 맺어질 때
하나님께서 두 가지 일을 행하신다고 말했다.
하나는 계시이고, 다른 하나는 사죄다.
사죄는 앞에서 ‘하나님의 망각’이라는 제목으로 설명했으니
오늘은 계시에 대해서 보충하겠다.
그 대목에서 나는 예레미야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계시의 명확성을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약속이 맺어지면
하나님을 알리는 말을 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명확히 알려진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것이 예레미야의 인식론적 한계다.
그러나 계시가 예수에게 일어났기 때문에
예레미야의 진술은 틀린 건 아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계시라는 말은
예수가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뜻이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일단 표면적으로 보면
예수는 하나님과 완전히 구별된다.
우리와 똑같이 인간으로 세상에 사셨던 예수를
창조주이면서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과 똑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수가 하나님의 계시라는 말은
예수에게 하나님의 구원 통치가 일어났다는 뜻이다.
그 구원 통치는 하나님 자체이며,
그것이 곧 계시이기 때문에
초기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분으로 인식하고 경험했다.
아래와 같은 바울의 진술은 바로 그 사실을 가리킨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 4:6)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따로 있고 영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영광으로 존재하신다.
그 영광이 하나님이고, 그것이 동시에 하나님의 계시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인격(예수의 얼굴)에,
즉 예수의 운명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보았다.
그것은 부활 경험이다.
부활 경험은 궁극적이고 종말론적 생명 경험이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 가능하다.
오늘 그것까지 말하기는 힘들고,
다른 글에서 여러 번 말하기도 했으니 그냥 넘어가자.
설명이 좀 복잡했다.
이런 신학적인 개념을 바탕에 두고 설교하다보니
설교가 끝난 뒤에도 뭔가 미진한 게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자주 들고,
사람들이 내 설교를 어렵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 된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내 설교에 귀를 기울여주는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보내주신 책 잘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제 나름으로는 기독교를 바르게 알고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바르게 아는게 중요하다는 생각에
공부를 하는데 목사님 글들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목사님 글들이 조금 어렵지만 읽으면 재미가 있습니다.
기독교나 성경 신앙에 대해서 공부한 경험이 없는 초신자인데
읽으면서 재미있는 이유가 뭘까요?
전 요즈음 저의 모습이 참 낯설기도 하고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