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구원(164)

조회 수 999 추천 수 0 2018.08.17 22:05:10

(164)

나는 한국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성수주일이라는 표어는 좋아하지 않지만 십계명의 한 대목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제는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수주일이라는 표어에는 일종의 율법주의적인 요소가 강하게 개입된 반면에 십계명의 안식일 규정에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은 삶의 리얼리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목사가 된 이후로, 아니 신학생 시절부터 자의로 예배를 드리지 않고 지나간 주일은 한 번도 없다. 혹시 한두 번 있었다면 그건 불가항력의 경우가 아니었겠는가. 몸도 비교적 건강한 편이라서 몸이 불편해서 예배를 빠진 적도 없다.

고대 유대인들은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안식일에 모든 일상을 멈추어야만 했다. 안식일에는 불을 사용하지 못하고, 따라서 새로운 빵을 굽지 못하고, 밭일을 나가지 못한다. 여행도 가지 못하고 운동도 하지 못한다. 말 그대로 모두가 안식해야 한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나그네, , 그리고 짐승들도 포함된다. 예수가 안식일에 장애인을 고친 사건은 유대인들의 눈에 비정상이다. 예수는 안식일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라 그 본질을 각성시킨 것이다. 안식일의 본질은 참된 쉼을 통해서 인간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당시 안식일 규정은 형해(形骸)로만 기능했었다.

현대인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특징은 일상의 과잉이다. 목사에게는 목회의 과잉이 이에 해당된다. 일상은 어떤 경우에도 상대화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지만 그것의 과잉은 오히려 일상을 훼손시킨다. 흔히 말하듯이 일상의 상투성에 떨어진다. 일상이 실제 생명으로 심화되고 풍요로워지려면 일상이 곧, 또는 언젠가는 끝난다는 사실을 직면해야한다. 일상의 과잉은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카지노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이 가족을 현실로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물론 일상의 과잉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죽음 자체를 모르는 건 아니다. 안다고 해서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그들에게 막연한 미래다. 이에 반해서 일상은 구체적인 현재이기에 여기에 매몰되는 것이다. 일상과의 단절을 통해서 일상을 의미 충만하게 누리며, 또한 훼손된 일상을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안식일 개념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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