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나는 예배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회중들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안식을 갈망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 갈망 자체가 은총이다. 은총 없이 갈망 없다. 그런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그들에게 영적인 안식을 경험하도록 예배에서 최선을 다한다. 우선 예배 참석만 해도 그렇다. 일 년 열두 달 52주일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대부분 참석하는 이들이 있다. 보통의 열정으로는 이게 불가능하다. 습관적으로 나오는 이들도 있겠으나 그런 습관마저 중심에는 영혼의 갈망이 들어 있다. 이들의 영혼을 생각할 때마다 목사로서의 책임감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빠지는 신자들도 대단한 사람들이다. 영혼의 갈망이 강렬하지 않으면 이런 정도로 예배에 참석하기 어렵다. 그들과의 신앙적인 연대감이 느껴진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예배에 참석하는 이들도 있다. 정말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귀한 시간을 낸 분들이니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이 더 필요하게 않겠는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오거나 그것보다 더 뜸한 이들도 없지 않다. 예배를 망각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칭찬받아야 한다. 이렇게나마 예배와의 끈을 이어간다는 것은 영혼의 안식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예배 참석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이니 그들에게 목사의 역할은 더 크다. 나는 예배에 참석한 모든 회중들을 똑같은 크기에서 소중하게 생각한다. 예배에 자주 참석하는 분들은 자주 참석하기에 소중하고, 이따금 참석하는 분들은 자주 만나지 못하기에 또 소중하다. 나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의 종말론적 안식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내가 먼저 예배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다. 이것이 목사로서 ‘나의 구원’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목사님, 이번주 예배시간에
이것이 영적인 안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읍니다.
예배를 통하여 세상과 삶의 피상적 모습과 상투성을 뚫고
의미와 희망을 공급 받는구나 하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평안을 느낄수 있는 이야기를 말하는곳이 없고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없는것처럼 보입니다.
교회에서 조차 배부름을 추구하던 무리에게
생명의 떡을 주리라던 말씀을 간과해 버리는것처럼 느껴지는 이때에
목사님의 어떤 회중이라도 소중하게 여기시는 모습과
예배에 집중하는 삶으로 인해 안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