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구원(178)

조회 수 1027 추천 수 0 2018.09.06 21:25:54

(178)

일정한 대상을 향한 혐오 현상은 공포심(포비아)에 연유한다. 한국기독교는 위에서 거론한 타종교와 동성애와 좌파에 대한 공포심이 극심하다. 악마에게 느끼는 공포심과 같다. 타종교를 인정하면 기독교의 구원론이 붕괴된다는 공포심이, 동성애를 인정하면 성경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공포심이, 좌파를 용납하면 교회가 붕괴될 것이라는 공포심이 크다. 교회 지도자들은 그런 공포심을 자극함으로써 목회의 성과를 올리기도 한다. 공포심은 기독교 신앙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만약 교회에서 공포심이 나타난다면 그건 신앙이 아니라 정치다. 기독교 신앙은 대상이 설령 악마라고 하더라도 연민을 느낄지언정 공포심을 느끼지는 않는다. 이미 악마는 극복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포심에 사로잡힌 교회에 무슨 영혼의 안식이 가능하겠는가.

영혼의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빛으로부터 온다. 그 빛이 너무 강하기에 직접 쳐다보았다가는 눈을 버릴지도 모른다. 직접 쳐다볼 수는 없고 그 빛이 우리를 감싸기만을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빛은 기독교인에게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기독교인을 그걸 세상에 선포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실을 알기에 기독교인은 어느 누구도 혐오나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칼 바르트의 아래와 같은 진술이 이를 의미한다.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대한 희망 안으로 능동적으로 수용된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아침 우리에게 새롭게 제기되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적 교회가 전하는 소식이며, 내가 그 소식을 들을 때 그것은 나의 고유한 과제가 된다. 한 그리스도인인 나에게 그 소식이 전해질 때 나는 그 소식의 전달자가 된다. 그때 나는 나의 입장에서 인간들 곧 모든 인간을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바라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제 내게는 모든 인간들을 위해 최선의 것을 희망하는 것 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다.(칼 바르트, 교의학 개요, 221).

 

마지막 문장에 모든 인간들을 위해 최선의 것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지금 한국교회가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이 바로 모든 인간들이다. 그들에게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복음의 빛에서 찾아내는 수고가 오늘날 더욱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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