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구원(166)

조회 수 858 추천 수 0 2018.08.21 20:56:07

(166)

나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안식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에서 구현되어야 할 영성의 가장 핵심적인 현실성(reality)이라고 생각한다. 목사의 궁극적인 관심도 바로 여기에 자리한다. 이 제목을 일일이 설명하려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안식의 핵심이 무엇인지, 현대 문명은 왜 안식을 허락하지 못하는지, 오늘의 교회는 안식을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담아내는지, 살아있는 한 궁극적인 안식을 경험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을 우리가 어떻게 버텨내야 하는지, 종말론적 안식을 오늘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맛보고 누릴 수 있는지,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지, 하나님의 창조와 종말론적 안식은 어떻게 관련되는지,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왜 종말론적 안식의 토대인지, 성령과 안식의 관계는 어떤지 등등, 이런 여러 관점들에 대한 성서적이고 교리적이며 인문학적 근거를 제시해야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중에 두 가지만 다루겠다. 안식은 왜 종말론적인가? 종말론적 안식이 예배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 이 두 질문의 바탕에는 오늘날 예배 공동체에 속한 기독교인들이 실제로 종말론적 안식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지에 대한, 더 근본적으로 오늘날 목회에 쫓기는 목사들은 예배를 인도하면서 종말론적인 안식을 경험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놓여 있다.

안식은 쉼이다. 쉼은 궁극적인 자유로부터 주어진다. 노예들은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니 쉼이 없고, 쉼이 없으니 안식도 없다. 두 발을 땅에 딛고 살아가는 한 우리는 모두 땅의 조건에 묶인다. 이 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돈벌이에 나서야 한다. 평생 먹을 돈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돈을 쓰기 위해서 신경을 써야한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마음먹은 대로 작동되는 게 아니다. 심지어 가족관계도 역시 땅의 조건이다. 서로 사랑하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완전한 자유로운 관계를 통해서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 개인에 따라서 큰 차이가 있긴 하다. 친구처럼 재미있게 지낼 수는 있지만 사람의 영혼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오늘의 문명은 안식을 파괴하는 힘으로 작동되기에 21세기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안식과는 거리가 멀다. 최선의 경우라고 하더라도 재미를 안식으로 착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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