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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초상집에 다녀왔습니다. 고인이 96세 남자이니 천수를 살고도 더 산 셈입니다. 큰 병 없이 그렇게 오래 살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사람들이 호상(好喪)이라 말할 만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호상이라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상대적으로 덜 슬플 뿐이지 좋은 죽음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죽음은 슬픔입니다. 죄의 승리입니다.
풍경은 늘 낯섭니다. 죽은 자는 관에 들어가 말이 없습니다. 가족들은 편안한 죽음을 안도하면서 손님맞이에 분주합니다. 고인보다 두 살 어린 미망인은 아무런 표정 없이 그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조문객들은 형식적인 조문을 마치고 서로 인사를 나누기에 바쁩니다. 먹고 마시면서 온갖 이야기의 꽃을 피웁니다. 죽은 자를 보내는 마지막 순간에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일상에 충실합니다.
주님, 조문객들도 곧 고인의 운명으로 떨어집니다. 조문객들은 먹고 마시지만 그는 관에 누워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바로 그 순간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그 순간이 오기 전에 지금의 이 일상을 생명으로 충분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죽음을 경험하셨다가 부활로 승리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