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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한 세례 요한의 증언이 요 1:29절부터 시작해서 34절까지 나온다. 첫 증언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표현이다. 그걸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다. 벌써 그림이 그려진다. 예루살렘 성전의 번제가 연상된다. 동물을 잡아서 피를 뿌리고 몸은 태운다. 물론 다 태우는 게 아니라 일부를 태운다. 나머지는 함께 제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나눠 먹거나,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동물을 번제로 바쳐서 죄의 용서를 기대했다. 요한은 그 번제 제물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본 것이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이 바로 인류 구원의 길이라는 뜻이다.
여기까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문제는 다음이다. 왜 하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굳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선택하셨을까? 다른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창조의 능력이 있는 분이라고 한다면 말씀 한 마디로 세상을 구원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십자가의 죽음인가? 십자가는 하나님 당신의 죽음이었다는 게 대답이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창조 원리를 해체하지 않으신다. 그 창조 원리에 따르면 인간은 죽어야 한다. 창조 원리가 죽음이라는 게 아니라 창조 원리가 부정당한 결과가 죽음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죽음의 방식으로 인간을 구원해야만 했다. 예수의 십자가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목사님, 그럼
구원을 '부정당한 하나님 창조원리의 원상복귀'라고 이해해도 될른지요.
그리고 그것이 부활이고요.
그래서 부활을 '다시 일어서다'의 의미로
아나스타시스(αναστασις)라고 했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많이 묵상해 보겠습니다.)
만일, '다시 세워진 하나님의 창조원리' 를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면,
저는 이게 (종말에 드러날)궁극적인 구원이며 생명이라고 생각되어지네요.
목사님, 이렇게 묵상하고 나니,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
하나님의 창조, 십자가의 예수님,
그 예수님을 믿는 지금의 나, 그리고 종말에 오실 예수님,
대체, 이 사이에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 걸까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