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와 믿음, 요한복음 묵상(20)

조회 수 3082 추천 수 0 2013.05.17 22:44:26

 

   포도주 이야기에서 마지막 결론은 제자들이 예수를 믿었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믿음이다. 믿음이 있다면 굳이 포도주 사건이 필요 없다는 말이 된다.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들지 않았다는 말이냐, 딱 부러지게 말하라고 다그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말해야겠다.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지 않았다.

   생각해보라. 물리적인 차원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는 ‘온전한 사람’이다. 온전한 사람이라면 사람의 정체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예수의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예수는 ‘온전한 신’이니까 그런 능력이 있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예수에게 성육신하신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는 분이 아니다. 그런 방식으로 신성을 드러내는 분이라면 굳이 십자가를 질 필요도 없다. 모든 걸 초능력으로 바꿔버리면 된다. 포도주 사건은 잊고, 믿음은 기억하라. 도마 전승에 따르면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 하지 않는가.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초자연적 기적을 모두 부정하면 예수님을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고 싶은 분은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예순임은 당연히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어야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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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13.05.17 23:43:09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예수님은 당연히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어야만 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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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9]길위의벗

2013.05.18 00:11:29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글인 것 같습니다. 포도주 이야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믿음' 기억하겠습니다.

[레벨:5]블루군

2013.05.18 01:51:53

궁금한 것은 왜 정목사님이 판넨베르크나 다른 신정통주의 신학자들과는 다르게

십자가 후 부활 교리와 이후 죽은자들의 부활의 문제에서 만큼은 역사적 실재성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시는지입니다.

다른 신정통주의 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마저 신화적 요소로 처리하신다면

신정통주의 논리의 지속이라고 볼 수 있을텐데

이 부분에서는 유독 '역사적' 실재성을 강조하시더라구요.

한국 기독교 환경하에서 현실과의 타협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뭐 지금 하시는 말씀이야 이전의 글들에서 했던 이야기들의 반복이어서인지 별 감흥은 없는데

왜 후반부에서는 오직 인간이신 예수님을 부정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닥터케이님. 설화라는 표현은 정목사님의 쓴 글에서 표현을 따온 겁니다. 설화라는 표현이 거슬리다면 정목사님께 그런 표현 쓰지 말라고 요청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이 신성을 사용한다는 것이 십자가를 부정하는 것이라니... 정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네요.

십자가가 그렇게 하찮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

오직 신이자 인간이셨던 예수님의 대속하심의 의미가 그런 초능력으로 없앨 수 있는 간단한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정말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레벨:14]닥터케이

2013.05.18 05:47:32

(1)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이 부활을 신화적 요소로 처리한다" 고 말씀하셨는데, 누가 그렇게 말했는지 구체적인 이름을 거명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신정통주의의 대부인 칼 바르트는 십자가의 부활 사건을 확고한 역사적 사실로 믿었는데 블루군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하게 생각하실 듯.

게다가, 판넨베르크 신학의 key word 중 하나가 부활 사건이며, (그는 예수와 하나님과의 일치를 확정적으로 결정하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의 정체를 근거 지우는 것은 부활 사건이었다고 말합니다) 부활의 역사성에 근거하여 그의 기독론과 역사인식이 펼쳐지는 것인데, 뜬금없이 판넨베르그가 예수의 부활을 신화라고 보았다고 말씀하시니 몹시 황당합니다.

판넨베르크가 부활의 역사성에 대해 논하기를, “예수의 부활 사건은 역사적인 사건이며, 그 당시에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다. "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건과 빈 무덤을 발견한 사건을 고찰해볼때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 아닐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판넨베르그가 부활 사건을 신화적인 요소로 취급했다는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2) "설화"라는 용어는 정목사님의 개인적인 어법이 아니라 성서신학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이며,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라는 뜻이므로 "허구적인 전설이라는 선입관을 가지지 마시라" 고 이미 두번에 걸쳐 설명드렸습니다. 정목사님이 사용하신 설화라는 용어가 불편한게 아니라 설화라는 용어에 대한 블루군님의 오해 혹은 선입관이 제게는 불편합니다.

(3) 지금까지 블루군님과 몇차례 대화를 나누면서 제가 받은 느낌은, "블루군님은 신정통주의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다" 는 것입니다. 아마도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에서 자유주의라고 알려진 내용들을 신정통주의와 혼동하고 있으신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정통주의는 성경의 영감을 부정하거나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거나 더 나아가서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정통주의가 자유주의는 더더욱 아니구요.

[레벨:5]블루군

2013.05.18 10:53:46

 1.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해설을 읽어보면 9장의 내용에서

 예수 부활에 대한 전승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전설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로 흐르고 그 내용에 대한 정목사님의 코멘트는

판넨베르크는 예수 부활 사건이 더 이상 논쟁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 이미 결정되어 버린 사실적 역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말에 이르기까지 그런 역사적 판단과 논쟁을 필요로 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실제로 예수 부활의 사실성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라고 코멘트 하고 있죠.

정목사님이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에서 한 이런 코멘트에 기초해서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는 내용을 말씀하신다면 그건 논리상 흐름이 이어지겠지만 설교에서는 역사적 실재성을 이야기 하신 것 같아 그 차이가 한국교회환경에 대한 현실적 타협인지 여부가 궁금했던 겁니다.

2. 이미 설화라는 의미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아닌 2차 가공이 된 이야기라고 이해를 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 왜 그 말을 무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1차적 요소가 아니라 그 필요에 의해서 가공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설화를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오해의 요소가 아니죠.

왜 제가 설화라는 말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네요.

[레벨:14]닥터케이

2013.05.19 08:34:01

벌써 목사님이 답글 다셨네요. 인용하신 부분은 판넨베르크가 부활전승이 전설이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전설적인 요소가 섞여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전승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있다는게 그의 주장입니다.

칼 바르트와 판넨베르크 모두 부활을 사실로 믿었으나 두사람의 차이는, 바르트는 부활사건은 역사적 과학적 방식으로는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때 참된 진리로 다가온다고 했으며, 판넨베르크는 이에 반발하여 부활사건은 역사적 과학적 연구로도 객관적인 입증이 가능할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비록 지금은 불완전하게 알지만 역사가 진행할수록 부활의 신비가 하나둘씩 밝혀질것이고, 모든 비밀이 밝혀지는 시점은 역사의 종말인 마지막 때인데, 십자가 사건은 이 종말의 시점이 역사속에 일부 구현된 사건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러니, 판넨베르크가 부활전승을 신화로 생각했다는 말은 그에 대한 큰 오해이며,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하면 판넨베르크 신학 자체가 붕괴됩니다.

[레벨:23]브니엘남

2013.05.18 06:04:49

요한복음 2장 11절에서 요한은 이것을 이적이나 기적이라고 하지 않고 '표적'이라고 하셨는데 목사님은 계속 기적이라고 하시니 기적이나 표적이 같은 것인가요? 다른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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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5.18 15: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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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블루군 님,
판넨베르크의 <사도신경해설>에 대한 저의 해설을 읽으셨군요.
판넨베르크의 그 책은 정말 영양가 만점의 책입니다.
신학생들만이 아니라 기존 목사님들도 읽으면
뭔가 기독교적인 시야가 트이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제가 글을 쓰다보면
다른 학자들의 주장과 나 자신의 주장이 뒤섞여서
독자들이 누구의 말인지 혼란을 느낄 때가 있을 겁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언어'의 한계입니다.
이런 건 직접 만나서 천천히 대화해야 해결됩니다.
그래서 오프를 통한 대화가 필요한 겁니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한다고 해도
아마 오프 대학과 교회 공동체는 없어지지 않을 거에요.
그건 그렇고,
부활과 역사 문제를 간단하게나마 보충해야겠네요.
판넨베르크가 부활에 대한 복음서 기자들의 보도에
신화적인 요소가 있다고 말한 것은
부활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고대인의 글쓰기 방식을 짚은 겁니다.
당시에는 당연히 신화적인 방식으로 글을 씁니다.
모든 글이 신화적이라는 게 아니라
그런 요소가 개입된다는 겁니다.
그것 자체를 부정하면
성서문자주의자가 되는 거지요.
그런 태도에 진정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를 사실 언어로 이해하는 차원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비록 신화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활은 역사적 사건에 틀림없다는 게 판넨베르크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로부터 판넨베르크는 보수주의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이런 정도로 설명이 되었을까?
됐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못하면
판넨베르크가 말하는 <역사개념>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건 여기서 좀 힘들겠군요. 
종말, 역사, 선취, 리얼리티 등등의 개념을 통합적으로 봐야 합니다.
좋은 주일을 맞으세요.

[레벨:0]Triumph

2013.05.20 21: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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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지요. 예수님께서 어찌 물로 포도주를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100% 인간이였지만, 동시에 100% 하나님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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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5.20 22: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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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riumph 님,
물과 포도주 이야기에 마음이 불편하시지요?
그럴 분들이 많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밝혔습니다.
이건 아무리 설명해도 승리 님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이 100% 하나님이라는 건 옳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포도를 병에 담아서 대 여섯달을 놓아두면
그게 포도주가 되는데,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시지요.
그러나 맹물을 1시간 안에 포도주가 되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물리와 생물의 원리를
거스르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제 말에 너무 큰 비중을 두지 마시고,
포도주 사건을 사실대로 믿고 싶으면 믿어도 됩니다.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레벨:17]아우

2013.05.20 23: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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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사님,
온전한 사람이라면 물 위를 걸을 수도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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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5.21 00: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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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ㅎㅎ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생각하면
뭔가 느낌이 좋지 않지 않나요?
저는 그런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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