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 이야기, 요한복음 묵상(19)

조회 수 3646 추천 수 0 2013.05.16 23:29:00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은 예수의 첫 표적으로 인정된다. 요 2:11절은 이렇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공관복음에는 없는 내용이다. 이 전승이 어디서 왔는지 우리가 지금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이 사건은 기독교적인 성격보다는 이교적인 성격이 강하다. 헬라 신화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사람들에게 포도주는 생활필수품이었다. 거기에 얽힌 에피소드는 지천이다.

   이 표적으로 예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한다. 요한복음 기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예수의 영광’이다. 그것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든지 차용할 준비가 되었을 것이다. 영광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신 감각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것을 찾는다. 그걸 이상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문제는 그런 감각적인 것에 머물러서 다른 것을 못 본다는 것이다. 마치 남편이나 아내의 사랑을 선물로만 확인하려는 태도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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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13.05.17 07:29:52

목사님,
"성서기자의 손가락을 보지 말고 그 손가락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를 봐라,"
이 말씀이군요.

목사님께서는 얼마전 요한복음 묵상 <은혜와 진리>편에서
"요한복음은 예수의 복음이 그 은폐된 세상과
그 생명을 드러내는 능력이라고 본다"라고 하셨는데, 
저는 이 요한복음(성서)도 은폐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연한 얘기지만요.^^
이 은폐된 성서, 그 성서가 우리에게 "나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를 
드러내 주는 사건, 그 사건이 성서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은 실로, 우리에게는 동터오르는 아침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새벽 저에게 그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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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00]정용섭

2013.05.17 22:49:07

손가락만 보면 안 되지만
손가락도 보아야 합니다.
손가락을 보는 것 자체로 간단한 게 아니지요.
우리 눈에 많은 비늘 비슷한 것이 끼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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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13.05.17 23:16:16

정말 그렇네요. 목사님,
손가락을 바로 볼 줄 알아야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도 바로 볼 수 있겠어요.
그동안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이번 계기로 이렇게 정리해야겠어요.
"성서기자의 손가락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잘 보려면 먼저 손가락을 잘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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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2]잠자는회색늑대

2013.05.18 11: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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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과 대화 속에서

영화 '패치 아담스'의 첫 장면이 문득 생각나네요.

좋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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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8]클라라

2013.05.18 13:57:16

저는 하두 오래전에 봐서 줄거리만 대강 기억나는데,
첫 장면이 어떤 장면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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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2]잠자는회색늑대

2013.05.18 14:22:37

주인공(로빈윌리암스)이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하지요.

그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전) 천재 경영인을 만나면서 물음을 주고 받는 장면이요.

물음이 아닌데 답변한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레벨:7]2C120

2013.05.20 23: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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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표적으로 예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한다.
 요한복음 기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은 ‘예수의 영광’이다. (요한복음 기자는)
 그것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든지 차용할 준비가 되었을 것이다.”
 
라고 하시고

다음 페이지에서는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만들지 않았다는 말이냐, 딱 부러지게 말하라고 다그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 문제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말해야겠다.
예수는 물을 포도주로 만들지 않았다.
생각해보라. 물리적인 차원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는 사람이 아니다.
예수는 ‘온전한 사람’이다. 온전한 사람이라면 사람의 정체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예수의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할 뿐이다.”

라고 하시니..

지난 3월 26일 매일묵상은 <존 머쿼리의 인간이 되신 하나님>이란 제목이더니
이 페이지는 그러면
 
<요한복음 기자가 되신 정용섭 목사님 내지는 하나님이 되신 정용섭 목사님> 쯤으로
제목을 바꾸는 게 어떨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손가락만 보면 안 되지만 
 손가락도 보아야 합니다. 
 손가락을 보는 것 자체로 간단한 게 아니지요. 
 우리 눈에 많은 비늘 비슷한 것이 끼어 있으니까요.”
 
라고도 하시는데..
손가락도 보는” 거야 뭐 그리 “간단한 게 아닌” 것이 되어야 하는 일까지도 아니지만
그 손가락이 되어 보려고 하는 손가락 자체에 “끼어 있는 많은 비늘 비슷한 것”과
그 손가락이 되어 보려고 하는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엉뚱한 방향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건
간단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간단한 게 아닌” 문제에 있어서의 최선의 해결을 위한 접근 방법이란 기도 가운데
그 손가락이 되어 보려고 하는 손가락”과
맨투맨으로 직접 대화하는 것이라는 게 아닌가 싶었더니만
그런 비밀 댓글 등등을 통한 단독 대화에 의한 지원 시도, 즉 
선의에서 나온, 그 같은 최선의 노력의 “실수”(?)란 건
그 손가락이 되어 보려고 하는 손가락”으로부터는 “냉소적”인 시니컬한 반응으로
일언지하에 거부되는 한편으로, 아울러
소위 그 “비늘 비슷한 것”들을 놓고 거드는 그 주위 “빠” 부대인지 뭔지의
적반하장 악질 사이버 폭력들이나 그 선의의 “실수”에 대한 대가(?)랍시고 몰려들 나오는가 하면
그 같은 악질 사이버 폭력에 방조로 협업하는 그 “친구”과 “이웃”의 "행태들"이나
그 선의의 “실수”에 대한 “대응”(?)이랍시고 나오곤 하니..
 
선의가 통하지 않는, 이런 별천지 '세상'의 상황이란 건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이자
그 “빠” 부대 일원 말마따나 이런 별천지 '세상'의 상황이란 건 곁에서 그냥 “구경”이나 하는 게
최선이다 라는 말이 있는 게 아마도 그래서 그런 듯.. —  그리고,
'그분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촛대 사이에”(계 1:13) 계신 분의
그 “불꽃 같은 눈빛”(계 2:18)과 그 “좌우에 날선 검”(계1:16, 2:12)이
그 촛대 간검(看檢)을 위한 행정 수행에 결단코 “실수”가 없으시다는 확고한 사실은
"성경문자주의에 빠진"(?), "사리분별이 안 될 정도로 순진한"(?) 자들이
 아닌 자들이라도 지키는 믿음 내용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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