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2일
대림절의 기쁨과 평화
지난 설교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그 순간이 오늘이기를, 그래서 대림절의 기쁨과 평화가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도대체 대림절의 기쁨과 평화가 뭔가? 이게 말이 되나? 실감이 가나? 선의의 속임수는 아닌가? 말로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 설명할 수는 있지만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그래도 말로 설명하는 수밖에 없다.
대림절의 중심 개념은 예수의 재림을 통하여 완성되는 생명에 대한 기다림이다. ‘생명 완성’은 수도 없이 말했기 때문에 듣는 거 자체가 지겹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전히 귀를 기울어야 한다. 그것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것만큼 하나님에게 가까이 갈 것이다. 그것 외에는 답이 없다. 노자와 장자가 도(道)라는 개념 없이, 그리고 하이데거나 존재 개념 없이 자기주장을 전개할 수 없듯이 기독교 신앙은 생명 완성에 대한 언급 없이 하나님을 말할 수 없다.
자신의 생명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기다린다는 것은 현재 자신의 생명이 잠정적이라는 사실을 뚫어보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이는 곧 자기가 자기의 생명을 완성할 수 없다는 뜻이다. 생명 완성이 예수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의 공연한 수고에 묶이지 않는다. 돈을 더 벌어야 한다거나, 집을 사야만 한다거나, 출세를 해야 한다는 수고로부터 벗어난다면 당연히 기쁨과 평화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겠는가. 물 위에서 힘을 빼고 누워 있으면 저절로 뜨는 것처럼 말이다. 힘이 들어가는 즉시 부력을 잃게 되고, 그런 상황이 두려워져서 힘을 더 주게 되고, 급기야 발버둥 치다가 익사한다. 대림절의 기쁨과 평화를 알면 돈 벌지 않고 신선처럼 이슬이나 물만 마시고 살라는 말이냐, 하고 시비 거는 분은 없으리라.
대림절의 기쁨과 평화는
아주 작은것에서 사소한것이 사소한게
아님을 알게됨입니다.
하고 있는일이 존재론적으로 동일하게
소중한 일임을 알게됨입니다.
기다림이 초조함이 아니라
기다림의 대상에 따라 기쁨이 될수
있습니다. 목사님의 매일묵상 또한
기쁨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