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8일
세리와 죄인
어제 설교 제목인 ‘기독교인 완전’은 기독교인의 삶이 세상에서 완전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완전한 삶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과정이면서 목표이면서 존재 근거이기도 한 그 무엇이다. 그것을 설교에서 말하려고 했는데, 전달이 잘 됐는지 모르겠다. 보충 설명을 몇 가지로 나눠서 해보겠다.
먼저는 설교 앞부분에서 잠간 언급된 세리와 죄인에 대한 이야기다. 믿음과 삶이 반드시 일치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세리와 죄인을 예로 들었다. 예수는 종교 엘리트들인 바리새인들로부터 세리나 죄인들과 어울리면서 먹고 마시기를 즐겨하는 자라는 비판을 들었다. 이게 과장된 말이 아니다. 예수는 사람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했지 그 사람의 지위와 인격을 본 게 아니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예수가 세리나 죄인으로 취급받던 사람들에게 삶의 변화를 직접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세리에게 그 직업은 악한 거니까 직업을 바꿔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직업이 세리였던 마태는 예수의 부름을 받고 직업을 포기했다는 말이 있지만, 이건 좀 다른 이야기다. 베드로와 안드레 등등의 친구들도 고기 잡는 직업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랐다. 마태나 베드로 모두 예수를 따르기 위해서 세상의 일을 포기한 것뿐이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과 윤리적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세상에서 어떻게 살든 아무 상관없이 예수만 잘 믿으면 된다는 말도 아니다. 복음은 가치 이전의 궁극적인 차원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복음으로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당연히 삶의 변화가 따른다. 이 순서를 거꾸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