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4일
삶의 추상화
지난 설교 앞부분에서 나는 스바냐가 예루살렘 주민들을 향해서 비판했던 우상숭배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다들 알고 실제로 경험하는 이야기다. 현대인들은 돈을 우상처럼 섬기고 있다. 돈의 절대화가 우상숭배의 본질이다. 그 대목에서 나는 이런 삶의 태도가 곧 삶을 추상화한다고 말했다. 이 말이 애매해서 오늘 보충 설명해야겠다.
돈의 절대화는 너무나 명백한 현상이라서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에게는 지금 돈이 신이다. 교육, 의료도 모두 경제 논리로 돌아간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이런 삶이 왜 추상적이라는 걸까? 대답은 간단하다. 돈이 추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밥을 먹고 살지 돈을 먹고 살지 못한다. 사람은 물을 마셔야지 돈을 마실 수는 없다. 돈이 있어야 밥도 먹을 수 있으니까, 더 나가서 돈이 많아야 밥도 더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돈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건 착각이다. 돈은 유통이 원활하게 작동되는 자리에서만 효력을 갖는다. 예를 들어 갑자기 폭설이 내려 모든 사람들이 고립된 상황이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먹을거리를 구입할 수 없다.
일상을 보자. 모든 사람들이 돈 버는 것에 몰두한다. 돈이 없으면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생존이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긴 하다. 그렇게 평생 돈을 벌어서 집을 마련한다. 그렇다면 그의 삶은 바로 집이라는 말이 된다. 자기의 실제 삶은 없는 거다. 그러니 추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돈이 우상이 된 세상에는 진짜 삶은 사라지고 비누거품 같은 삶의 겉모양만 남는다. 소득수준이 비교적 높은 수준에 올랐어도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진짜 삶이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맞습니다. 어제 기사보니 30대 사망 중에 자살이 49%라고 나온 것 봤습니다.
자살원인이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하나 그것의 근원은 돈이니 말입니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있듯이......오늘 날씨처럼 기분이 참 거시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