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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설교 본문은 사 50:4-9절이었다. 2천5백 년 전 유대의 한 선지자였던 소위 제 2이사야가 전한 말씀이다. 설교 시간에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 대목이 있는 것 같아서 오늘 오후에 있었던 가정 예배 시간에 그중의 한 구절을 택해서 다시 설명했다. 사 50:8절이다. 이렇게 시작된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의는 구약 메시지의 핵심이다. 의를 얻는다는 말은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다. 인간이 의와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어야만 한다. 그렇게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기독교인은 예수 사건이 바로 의의 길이라고 믿는다. 우리 스스로는 의를 이룰 수 없다. 즉 생명을 만들어낼 수 없다.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셨다. 그 생명의 완성은 부활이다.
다음 주일은 부활절이다. 예수에게 일어난 부활 생명을 신뢰하는 사람은 의를 얻은 사람, 즉 생명을 얻은 사람이다. 이사야는 자기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예수 사건을 예언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의를 얻는다는 말은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다”
라고 매일묵상 본문에는 되어 있으니..
'의를 얻는다'는 말이 그러면 '구원을 얻는다'라는 뜻'... ??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어야만 한다. 그렇게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는다는 뜻이다.”
라고 매일묵상 본문에는 되어 있으니..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는다는 것, 그렇게 인정 받는다는 것'이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얻는다'는 뜻...??
“기독교인은 예수 사건이 바로 의의 길이라고 믿는다.
우리 스스로는 의를 이룰 수 없다. 즉 생명을 만들어낼 수 없다.”
라고 매일묵상 본문에는 되어 있으니..
'우리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없다'라는 것이 그러면
'우리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없다'라는 뜻... ??
나아가
"우리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라는 것이 그러면
"우리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라는 뜻... ??
나아가
"우리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라는 것이 그러면
"우리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라는 뜻... ??
'다시 칭의에 대해' 란 제목으로 나온 생각과 표현.. 을 대하고.
( 제한된 본문 공간의 한계에서 비롯된 축약(?) 표현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칭의'와 '생명'과 '구원'에 관련해 혼선의 여지가 있는 불분명한 표현들은 피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치려다가.. 개념 구분과 표현의 적절성에 관련해 떠오른 이런 생각 표명까지도
다시 또, "말꼬리 잡는 행태"(??)나 "narcissism"(??) 운운으로 비방하는 댓글들에 대해선,
하긴 뭐 그저 다시 "......... just speechless.........." 일 따름이겠습니다 마는... )
부활주일을 앞둔 고난주간에 예수를 통한 의의 길을 새롭게 생각합니다.^^
생명의 완성인 부활은 하나님으로부터 일어난 은혜일 뿐이지요.
생명을 얻은 사람답게 살기를 소원하고 있지요^.^
목사님, 속초에는 엄청나게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답니다. 펑펑....
창으로만 보기에는 아까운 절경을 체험하려고 나가려고요^^ㅎㅎ
감사함으로 그분의 은혜만을 의지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