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부활을 단순히 ‘다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적으로 시간은 회귀가 아니라 진행이다. 생명도 앞으로 나갈 뿐이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생명 현상은 불가역적이다. 꽃을 다시 씨앗으로 만들 수는 없다. 물론 꽃이 씨앗을 맺긴 하지만 그 씨앗은 꽃을 피운 그 씨앗은 아니다. 거의 비슷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다르다. 진화 현상을 보더라도 생명은 앞으로 진행되는 것이지 뒤로 복귀하는 게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흔리 창조 원리의 회복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그건 틀린 말이다. 통일교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지난 30일 묵상에서 말했듯이 이런 점에서 부활은 다시 지난날의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부활 생명을 희망하는 사람은 지금의 모든 생명 경험을 포기해야만 한다. 부활 생명은 여기서 경험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생명이다. 이 세상의 생명 현상에 미련이 많은 사람은 부활 생명을 희망하지 못할 것이다. 이 세상이 좋으면 저 세상을 기대하지 않기 마련이다. 기독교인들이 이 세상에서 비관적으로, 허무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절대적인 생명 앞에서 모든 것들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부활 생명으로 변화될 그 날이 오리라.
성서마당 매일말씀이 성경책에서 읽는 어려운 대목을 풀어서 해석해주신것 같지만 열공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오늘 어느 목사님의 아드님이 다섯살때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냐는 질문을 주제로 하늘이 영원한가?. 우주가 영원한가?
설교를 듣다가 빅뱅이론부터 과학적인 예시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우주도 시작점이 있고 종말이 있다는걸 이해하고 보니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말씀데로 이런 의문들이 신앙의 초석이 될수 있겠죠?...
주기도란? 책을 읽고 있는중인데 하오체가 익숙치 않아 속도가 더디지만 중심이 될만한 책을 잘몰라
우선 목사님 쓰신 책부터 정독하려고 합니다.
어제는 아이와 함께 세레를 받아 무척 행복했습니다.
웨하스 님,
지난 부활절을 기억하고 계세요.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의식이 세례입니다.
목사 안수도 세례에는 훨씬 못 미칩니다.
교황도 역시 세례교인에 불과한 거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더불어서 살았다는 현실로 들어가는 의식이거든요.
씨앗과 꽃, 빅뱅 ... 등등의 공부를 통해서
세상의 신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그게 사실은 인문학 공부에요.
그것이 신앙 성장에 필요한 이유는
신앙이 그런 요소들과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언젠가 때가 되면 세례의 신비가,
또한 세례의 일상이라 할 성찬의 신비가
몸 전체로 느껴질 날이 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