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클레시아
교회라는 단어가 신약의 서신에는 종종 나오나 복음서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마태복음에만 두 번 언급되었다. 16:18절과 18:17절이다. 16:18절이 잘 알려진 구절이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로마가톨릭 교회는 이 구절을 근거로 베드로는 1대 교황이며 그 이후의 교황이 교회를 대표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정교회와 개신교회는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다. 에클레시아는 본래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교회를 가리키지 않는다. 영주가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려고 각 지방의 책임자들을 소집하는 행위와 그런 모이는 과정이 바로 에클레시아다. 교회 언어가 아니라 세속 정치 언어였다. 그런 에클레시아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 이후 제자들에 의해서 교회를 가리키는 단어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교회는 곧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예수는 당연히 에클레시아를 모른다. 예수께서 그 단어를 베드로에게 사용했다는 성경 본문은 마태복음 공동체가 형성되던 시절의 믿음이 반영된 것이다. 마태복음 기원후 80 전경에 기록되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성경을 읽을 때 그 성경 본문이 기록된 ‘삶의 자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마태복음은 마태 공동체가 처한 삶의 자리가 있고, 마가복음은 마가 공동체가 처한 삶의 자리가 있으며, 누가복음은 누가 공동체가 처한 삶의 자리가 있다. 요한복음이 공관복음보다 눈에 뜨일 정도로 내용과 형식에서 크게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복음서 중에서 가장 늦게 기록된 요한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당시 시대정신인 그리스 철학으로 변증한 문서다. 그래서 첫 구절부터 스토아 철학의 핵심 개념이 로고스를 언급한다.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절과 14절)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그 시대의 역사적 한계나 세계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을 무시하고 성경에 나온 구절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태도는 광신이지 진리에 토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이 아니다. 성경이 실제로 말하려는 핵심과 당시의 세계관을 혼동하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마태복음(은) 기원후 80(년) 전 경에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