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은폐된 하늘나라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만이 아니라 우주론적 차원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태양의 나이는 줄잡아 45억 년이다. 빅뱅은 138억 년 전 사건이다. 태양을 도는 행성인 지구는 태양에서 대략 1억5천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초속 30만 킬로미터 속도인 태양 빛은 8분여 후에 지구에 닿는다. 그 태양 빛은 지구의 생명체를 살리는 근원이다. 이 모든 물리적 현상이 우리가 다 파악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밥을 먹는다는 말은 곧 태양 에너지를 먹는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그 태양 에너지는 빅뱅 이후 만들어진 흑암 에너지와 연결된다. 우주 전체와 우리의 일상이 하나를 이루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신비로운 현상인가. 미시 물리의 세계도 거시 물리의 세계와 역시 비슷하다. 그 모든 미시와 거시 물리 세계가 서로 맞물려 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예수의 말씀은 종교적인 관념이 아니라 명백하고 궁극적인 사실이다. 교회는 예수의 이 선포를 자신의 존재 근거로 삼는다. 창조 신앙이 바로 이를 가리킨다. 창조 신앙 없이는 교회는 존립할 수 없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신조라 할 사도신경이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로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내가 담임 목사로 사역한 교회에서는 매달 한 번씩 성찬 예식을 거행했다. 성찬 예식에 필요한 도구는 빵과 포도주다. 빵은 예수의 몸이고 포도주는 예수의 피라는 문구가 성찬 예식문에 나온다. 이는 단순히 종교적인 의식문에 머물지 않는다. 가장 소박한 먹을거리인 빵과 포도주는 우리가 실제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다. 고체로 된 빵을 우리가 씹어서 먹고, 액체로 된 포도주를 마시는 방식으로 우리는 지구와 우주와 연결된다. 나는 성찬 예식을 거행하면서 이렇게 기도한다.
인간으로 인해서 기후위기가 현실로 다가오는 가운데 지구에 여전히 먹을거리가 생산된다는 사실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성찬대 위에 놓인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하나님의 우주론적 창조 능력이 작용했습니다. 포도가 맺히고 발효되는 과정에도 역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 전체가 작용했습니다. 개인으로나 인류 전체로나 언젠가 더는 먹지 못하며 마시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빵과 포도주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믿고 받아서 먹고 마시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중심이라 할 성찬 공동체로서의 교회 정체성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따라서 교회 구원도 측정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