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하나님 나라
기원후 40-60년대에 바울이 쓴 여러 편지에, 예를 들어서 데살로니가전서와 데살로니가후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등등에 나오는 에클레시아가 이보다 훨씬 뒷날 기록된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예수께서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는 사실이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교회가 아니라 하늘나라, 또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있었다. 그의 공생애에서 선포한 첫 말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이후 전개되는 예수 활동과 운명은 모두 하늘나라와 연결되었다. 만약 오늘의 교회가 근본에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기원한 공동체라는 사실을 주장하려면 우선 하늘나라, 또는 하나님 나라와의 관련성을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는데 제자들은 교회를 조직했다는 어느 신학자의 말이 옳든 그르든 예수의 하나님 나라와 관련성을 찾지 않거나 그런 노력이 크게 부족하다면 교회의 근본 토대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위와 운명에 따르면 교회보다 하나님 나라가 우선하기에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종속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신약성경 언어인 그리스어 ‘헤 바실레이아 투 데우’(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의 번역이다. 나라로 번역된 바실레이아는 어떤 공간적인 영역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힘이다. 통치이고 다스림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곧 하나님 나라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비유는 모두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한다. ‘하늘나라는 … 같다.’라는 표현을 반복하셨다. 거기에는 교황의 자리가 없다. 목사의 자리도 없고 당회원의 자리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만 충만하다. 하나님의 통치에만 영혼의 중심 무게를 두었기에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위해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안식일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어떤 여자를 용서하실 수 있었으며, 소위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둘째 아들이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로 잔치를 베풀 수 있었고, 예루살렘 성전의 종교 권력에 단호히 저항할 수 있었다. 오늘 대한민국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가 선포되고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 앞에 자신을 낮추면서 굴복시키고 있을까? 교회를 하나님 나라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교회를 하나님나라로 착각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울은 아닐까? 잠깐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물론 아니지만요)
바울은 교회를 세우고 교회에 편지하고 거기서 많은 신학적 입장을 정리했음에도
그 내용보다는 교회 자체에 어떤 구원이나 거룩성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을 볼 때 말입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라고 말하는 곳이 그 장소가 그 사람들의 무리가 교회인가?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질문과 고백을 받아내지 못하는 교회를 볼 때, 하나님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비본질적인 것들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교회를 볼 때,
하나님과 시대정신이 뒤섞인 혼합주의의 교회를 볼 때,
나는 흔히 말하는 교회라는 곳에 다녀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