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간략하게 말하자. 예수의 십자가 처형 뒤에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주로 여성 제자들이 유월절 축제가 낀 안식일이 지난 이른 새벽에 예수 시신이 묻힌 아리마대 요셉의 가족 묘지에 갔다가 예수의 시신이 없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의 반응이 복음서에 따라서 다르다. 가장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은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막 16:8) 마가복음이 전하는 부활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막 16:9절 이하에 나오는 몇몇 보도는 사본에 따라서 없는 이야기다. 무슨 말인가? 빈 무덤이 예수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빈 무덤에서 부활 신앙이 일어난 게 아니라 부활 신앙에서 빈 무덤 전승이 나온 것이다.
나는 오늘 대한민국 그리스도인들이 예수의 부활을 실증적으로 너무 분명한 어떤 생물학적 사건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죽었던 예수가 제자들 앞에 살아있는 자로 현현했다는 고백을 문자의 차원에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절대 생명 앞에서 두려움도 없고 떨림도 없으며 놀람도 없다. 부활 사건의 그 아득한 깊이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그냥 믿을 뿐이다. 그런 믿음은 순박하기는 하나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 어디 부활만이겠는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그리스도교 교리를 진지하게 대면하지 않는다. 믿는다는 열망만 강렬하지 믿음의 내용은 허술하다. 자신의 종교적 열망에만 매달리다 보니 영혼은 점점 메말라 간다. 영혼이 갈급하고 절실한 게 아니라 메마른 것이다. 따라서 영혼의 울림과 공명이 일어날 수 없다. 진리에 대한 간절함도 없다. 그런 건조한 영혼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기 힘드니까 신자끼리의 경쟁, 교회끼리의 경쟁, 세상과의 경쟁에 과도하게 열을 올린다. 인문학적 소양이 전혀 없으면서 부동산 투기로 운 좋게 졸부가 되어 자기 재산을 자랑하기에 바쁜 사람들의 행태와 비슷하다. 오늘 대한민국 교회는 부활 공동체 맞나? 절대 생명이 너무 무서워서 감히 아무 말도 못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약장사처럼 떠벌리는 거 아닌가?
메마는-메마른